세그먼트 라우팅(Segment Routing, SR-MPLS·SRv6)
1. 개요
세그먼트 라우팅(Segment Routing, SR) 이란 패킷의 출발지 노드(ingress) 가 목적지까지 거쳐야 할 경로를 세그먼트(Segment)의 정렬된 목록으로 패킷 헤더에 직접 삽입하고, 중간 노드는 그 목록을 순서대로 처리하기만 하는 소스 라우팅(Source Routing) 기반의 경로 제어 아키텍처다. 경로 정보가 패킷 자체에 담기므로, 코어 노드가 경로별 상태(per-flow state)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 IETF는 이를 RFC 8402(Segment Routing Architecture)로 표준화했으며, 데이터 평면은 MPLS 레이블을 재사용하는 SR-MPLS 와 IPv6 확장헤더를 쓰는 SRv6 두 가지로 구현된다.
세그먼트 라우팅이 등장한 배경은 기존 MPLS 트래픽 엔지니어링(TE) 제어 평면의 상태 폭증(state explosion)과 운영 복잡성에 있다. 전통적 MPLS-TE는 명시적 경로를 세우기 위해 RSVP-TE 라는 별도 시그널링 프로토콜을 쓰는데, 이 방식은 모든 터널 경로상의 모든 노드가 각 LSP마다 예약 상태를 저장·갱신해야 한다. 터널 수가 N, 경로상 노드가 M이면 코어가 관리할 상태는 대략 N×M으로 증가하여, 대규모 백본에서 수만 개의 터널을 운영할 때 제어 평면이 심각한 부담을 진다. 또한 LDP와 RSVP-TE라는 두 프로토콜을 병행 운영해야 하고, 장애 시 재수렴·재시그널링이 느려 50ms 복구(FRR)를 위해 백업 터널을 사전 설정하는 추가 복잡성이 생긴다.
여기서 "소프트 상태(soft state)"란 RSVP-TE가 터널 예약을 주기적인 refresh 메시지로 유지하는 방식을 가리키는데, 메시지가 끊기면 예약이 소멸하므로 노드들은 끊임없이 상태를 주고받아야 한다. 노드·링크 수가 수백에 이르는 대규모 백본에서 이 refresh 트래픽과 상태 테이블 자체가 제어 평면 CPU·메모리를 잠식하고,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노드 재기동 시 상태 복원이 지연되는 운영 취약점 으로 작용했다. 세그먼트 라우팅은 경로 정보를 패킷으로 옮겨 이 주기적 상태 유지 자체를 없앴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단순화를 이룬다.
두 번째 배경은 SDN·네트워크 자동화와의 정합성 요구다. 2010년대 들어 네트워크 운영이 중앙 컨트롤러 기반으로 옮겨가면서, 컨트롤러가 경로를 계산해 노드에 상태를 밀어 넣는(push state) 방식보다, 경로를 패킷 헤더에 실어 상태 없는 포워딩 을 하는 방식이 훨씬 확장성이 좋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세그먼트 라우팅은 경로 지능을 엣지(출발지 노드)와 컨트롤러로 집중시키고 코어를 단순화하므로, PCE(Path Computation Element)·BGP-LS 기반 중앙 제어와 자연스럽게 결합한다. 세 번째 배경은 IPv6 전면화 로, SRv6는 별도 터널 캡슐화 없이 IPv6 주소 자체를 세그먼트 식별자(SID)로 사용하여 네트워크를 하나의 프로그래밍 가능한 자원으로 다룬다.
실제 수치로 이 동기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가령 노드 100개 규모의 백본에서 각 노드 쌍 간 TE 터널을 full-mesh로 운영하면 약 1만 개(100×99)의 LSP가 생기고, RSVP-TE에서는 각 LSP가 경유하는 모든 중간 노드가 Path/Resv 상태를 주기적으로 refresh해야 하므로 코어 노드 하나가 수천 개의 소프트 상태를 유지·갱신하게 된다. 세그먼트 라우팅은 이 full-mesh 터널을 노드별 Prefix SID 100여 개의 광고 만으로 대체하므로, 코어가 유지할 per-tunnel 상태가 사실상 0으로 수렴한다. 이처럼 상태 복잡도를 O(터널수×홉수)에서 O(노드수)로 낮추는 것이 세그먼트 라우팅의 가장 큰 수학적 이점이다.
세그먼트 라우팅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이들은 뒤에서 다룰 TE·FRR·VPN·네트워크 프로그래밍이 모두 성립하는 토대다.
- 상태 없는 코어(Stateless Core): 경로 상태가 패킷에 있으므로 중간 노드는 터널별 상태를 저장하지 않는다. 확장성의 근원이다.
- 기존 IGP 재사용: 세그먼트 분배를 위해 새 프로토콜을 만들지 않고 IS-IS·OSPF의 확장(TLV) 으로 SID를 광고한다. LDP·RSVP-TE를 제거할 수 있다.
- 소스 라우팅: 출발지가 경로를 결정하므로 TE 정책을 엣지 한 곳에서 유연하게 적용한다.
- 두 데이터 평면: MPLS 레이블을 쓰는 SR-MPLS(점진적 전환에 유리)와 IPv6 헤더를 쓰는 SRv6(네트워크 프로그래밍·서비스 체이닝에 유리)를 선택할 수 있다.
- ECMP 친화성: Prefix SID는 특정 경로를 강제하지 않고 IGP 최단경로를 따르므로, 동일 비용 다중경로(ECMP)를 자연스럽게 활용해 부하를 분산한다. 필요할 때만 Adjacency SID로 특정 경로를 강제하는 "필요한 만큼만 명시" 전략이 가능하다.
2. 세그먼트 라우팅 아키텍처와 핵심 개념
세그먼트 라우팅 도메인은 IGP로 연결된 노드들과, 경로를 계산·주입하는 컨트롤러(PCE)로 구성된다. 출발지 노드가 세그먼트 목록을 삽입하면 패킷은 그 순서를 따라 전달되고, 각 세그먼트의 끝(endpoint) 노드에서 해당 세그먼트가 소비된다. 전체 구조는 다음과 같다.
graph LR
CTRL["SDN 컨트롤러 / PCE (경로계산)"] -. "BGP-LS / PCEP" .-> R1
R1["R1 Ingress (SID 목록 push)"] --> R2["R2 (Node SID 처리)"]
R2 --> R3["R3 (Adjacency SID: 특정 링크 강제)"]
R3 --> R4["R4 (Node SID 처리)"]
R4 --> R5["R5 Egress (마지막 SID pop)"]
subgraph SR_Domain["SR 도메인 (IGP: IS-IS/OSPF로 SID 광고)"]
R1
R2
R3
R4
R5
end
가. 세그먼트(Segment)와 SID. 세그먼트란 "패킷이 따라야 할 하나의 지시(instruction)"이며, 이를 식별하는 값이 SID(Segment Identifier) 다. SR-MPLS에서 SID는 20비트 MPLS 레이블로, SRv6에서 SID는 128비트 IPv6 주소 형태로 표현된다. 세그먼트는 크게 두 종류다. 첫째 Prefix SID(그중 특정 노드를 가리키면 Node SID) 는 "해당 목적지까지 IGP 최단경로로 가라"는 전역적(global) 지시이며 도메인 전체에서 유일하다. 둘째 Adjacency SID 는 "이 노드에서 저 특정 링크(인접)로 나가라"는 지역적(local) 지시로, 특정 노드에만 의미가 있다. 이 둘을 조합하면 "최단경로로 R4까지 간 뒤, R4에서 반드시 특정 링크를 통해 R5로"처럼 느슨한 경로(loose)와 엄격한 경로(strict)를 섞어 표현할 수 있어 TE의 표현력이 매우 높아진다.
나. 세그먼트 목록(Segment List)과 Active Segment. 출발지 노드는 여러 SID를 정렬된 목록(ordered list) 으로 쌓는다. 패킷은 항상 목록의 맨 위(또는 포인터가 가리키는) 활성 세그먼트(Active Segment) 를 기준으로 전달되며, 해당 세그먼트의 endpoint에 도달하면 그 세그먼트가 완료되고 다음 세그먼트가 활성화된다. SR-MPLS에서는 레이블 스택의 top 레이블을 pop하며 진행하고, SRv6에서는 SRH(Segment Routing Header) 의 Segments Left 포인터를 감소시키며 진행한다. 예컨대 목록이 ⟨R3-Adj, R5-Node⟩이면, 먼저 R3의 특정 링크를 강제로 거친 뒤 나머지는 R5까지 최단경로로 간다.
여기서 중요한 설계 원칙은 "중간 노드는 자신이 endpoint인 세그먼트만 처리하고, 나머지는 보지 않는다" 는 점이다. R2가 활성 세그먼트의 endpoint가 아니라면 R2는 그 세그먼트(예: R3-SID)를 향한 최단경로 포워딩만 수행할 뿐, 목록 전체를 해석하지 않는다. 이 지역성(locality) 덕분에 코어 노드의 처리가 단순해지고, 목록이 길어도 각 노드의 부담은 일정하게 유지된다. 이것이 세그먼트 라우팅이 긴 TE 경로에서도 코어 확장성을 잃지 않는 구조적 이유다.
구체적 예로, 혼잡한 R2-R4 직결 링크를 피해 R3을 경유시키고 싶다고 하자. 출발지 R1은 ⟨R3의 Node SID, R5의 Node SID⟩ 두 개의 전역 SID만 쌓으면 된다. 패킷은 먼저 R3까지 IGP 최단경로(R1→R2→R3)로 가고, R3에서 R3-SID가 소비된 뒤 R5까지 다시 최단경로(R3→R4→R5)로 간다. 결과적으로 R2-R4 직결을 쓰지 않는 우회가 단 두 개의 SID 로 표현된다. 만약 R3에서 특정 병렬 링크 하나만 쓰도록 더 강제하려면 그 자리에 R3의 Adjacency SID 를 끼워 넣으면 된다. 이처럼 전역·지역 SID의 조합만으로 TE 정책의 세밀함을 자유롭게 조절하는 것이 세그먼트 라우팅 표현력의 핵심이다.
다. SRGB와 SRLB(레이블 블록). SR-MPLS에서 Prefix SID는 실제 레이블 값이 아니라 인덱스(index) 로 광고되고, 각 노드는 SRGB(SR Global Block) 라는 예약된 레이블 범위(예: 16000~23999)의 시작값에 인덱스를 더해 실제 레이블을 계산한다. 도메인 전체가 동일한 SRGB를 쓰면 SID 인덱스가 전역적으로 일관되어 운영이 단순해진다. 예컨대 SRGB가 16000에서 시작하고 R5의 Prefix SID 인덱스가 105라면, 모든 노드가 R5를 레이블 16105로 동일하게 인식하므로 운영자가 레이블을 직관적으로 추적할 수 있다. 반대로 노드마다 SRGB가 다르면 같은 목적지라도 노드별 레이블이 달라 디버깅이 번거로워지므로, 실무에서는 도메인 단일 SRGB 를 강력히 권장한다. Adjacency SID처럼 지역적 값은 SRLB(SR Local Block) 에서 동적으로 할당된다.
라. 제어 평면 — IGP 확장과 PCE. 세그먼트 라우팅은 별도 레이블 분배 프로토콜(LDP) 없이, IS-IS·OSPF에 SID 광고용 TLV·서브TLV를 확장하여 각 노드의 Prefix/Adjacency SID를 도메인 전체에 전파한다. 이 점은 운영상 매우 중요한데, 기존 MPLS가 IGP(최단경로 계산)와 LDP(레이블 분배)를 분리된 두 제어 평면 으로 운영하면서 둘의 상태가 어긋날 때 블랙홀이 생기는 문제를 안고 있던 반면, SR은 라우팅과 레이블을 단일 IGP 상태로 통합 하여 이 불일치를 구조적으로 제거하기 때문이다. TE 경로가 복잡해 분산 계산이 어려운 경우, BGP-LS 로 토폴로지를 수집한 PCE/컨트롤러 가 제약(대역폭·지연·affinity)을 반영한 최적 세그먼트 목록을 계산하여 PCEP 로 출발지 노드에 SR-Policy 형태로 주입한다. 즉 제어 지능은 중앙(또는 엣지)에, 전달은 코어에 분리 배치된다. 이 구조 덕분에 컨트롤러가 전체 토폴로지를 조망하며 글로벌 최적화를 수행할 수 있어, 각 노드가 지역 정보만으로 판단하던 분산 TE보다 자원 활용률이 높다.
3. SR-MPLS와 SRv6 데이터 평면 동작
데이터 평면 관점에서 두 방식은 "SID를 레이블로 표현하느냐, IPv6 주소로 표현하느냐"에서 갈린다. 공통점은 둘 다 push(목록 삽입)·continue(최단경로 전달)·next(세그먼트 완료 후 진행) 라는 동일한 추상 동작을 따른다는 것이고, 차이는 그 동작을 MPLS 레이블 연산으로 구현하느냐 IPv6 헤더 연산으로 구현하느냐에 있다. 아래 시퀀스는 SRv6 패킷이 SRH를 따라 어떻게 전달·소비되는지를 보여준다.
sequenceDiagram
participant R1 as R1 Ingress
participant R2 as R2 (Endpoint SID-A)
participant R4 as R4 (Endpoint SID-B)
participant R5 as R5 Egress
R1->>R2: "IPv6(DA=SID-A) + SRH[SID-B, SID-A], SL=1"
Note over R2: "DA가 자신의 SID-A와 일치 → End 동작, SL 1→0, DA=SID-B"
R2->>R4: "IPv6(DA=SID-B) + SRH, SL=0"
Note over R4: "DA가 SID-B와 일치 → End.DX6 등 종단 동작 수행"
R4->>R5: "원 페이로드(디캡슐화) 전달"
가. SR-MPLS 전달. SR-MPLS는 기존 MPLS 포워딩 하드웨어를 그대로 쓴다. 출발지는 세그먼트 목록을 레이블 스택 으로 push하고, 각 노드는 top 레이블을 보고 자신이 endpoint면 pop(또는 PHP로 penultimate에서 pop), 아니면 최단경로로 swap·forward한다. 핵심 이점은 LDP·RSVP-TE 제거 로, 레이블 분배가 IGP에 통합되어 제어 평면이 크게 단순해지고, 기존 MPLS 망에 점진적(incremental) 으로 도입할 수 있다. 다만 깊은 세그먼트 목록은 레이블 스택이 깊어져 일부 구형 ASIC의 push 깊이 한계(예: 5~6단)에 부딪힐 수 있다.
SR-MPLS의 또 다른 장점은 기존 MPLS 서비스(L3VPN·L2VPN·EVPN)와의 공존 이다. 전송 레이블만 LDP/RSVP-TE에서 SR로 교체하고 서비스 레이블(MP-BGP)은 그대로 유지할 수 있어, 서비스 중단 없이 코어 제어 평면만 현대화하는 전환이 가능하다. 이 "서비스는 두고 전송만 바꾼다"는 특성이 통신사업자가 SR-MPLS를 첫 단계로 선택하는 결정적 이유다.
나. SRv6 전달과 SRH. SRv6는 IPv6 패킷에 SRH(Segment Routing Header, IPv6 라우팅 확장헤더 Type 4, RFC 8754) 를 추가하고, 세그먼트 목록을 IPv6 주소의 배열 로 담는다. 패킷의 목적지 주소(DA)에는 항상 현재 활성 SID가 들어가며, endpoint 노드는 DA가 자신의 로컬 SID와 일치할 때 Segments Left(SL) 포인터를 1 감소시키고 다음 SID를 DA로 복사해 전달한다. SRv6의 혁신은 SID 구조에 있다. 128비트 SID를 Locator(라우팅 가능한 상위 비트) + Function(노드가 수행할 동작) + Argument 로 나누어, 주소 하나가 "어디로"뿐 아니라 "무엇을 하라" 까지 지시한다.
다. 네트워크 프로그래밍(Network Programming, RFC 8986). SRv6는 Function 필드에 표준 동작(behavior)을 정의하여 네트워크를 프로그래밍한다. 대표적으로 End(다음 SID로 진행), End.X(특정 인접으로 L3 교차연결), End.DT4/DT6(VPN 테이블 조회 후 디캡슐화), End.DX2(L2 교차연결) 등이 있다. 이로써 VPN·서비스 체이닝·TE를 별도 프로토콜 없이 SID 목록 하나로 표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방화벽(SID1)→DPI(SID2)→목적지 VPN(SID3)"을 목록으로 엮으면 서비스 펑션 체이닝(SFC)이 그대로 성립한다. 기존 MPLS가 L3VPN·L2VPN·TE·FRR을 각기 다른 제어 평면(MP-BGP·RSVP-TE·LDP)으로 조립해야 했던 것과 대비하면, SRv6는 이 모든 서비스를 하나의 통합된 SID 의미 체계 로 환원한다는 점에서 질적 차이가 있다. 이는 네트워크를 "패킷에 명령을 실어 실행하는 분산 컴퓨터"로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며, SRv6를 단순 전달 기술이 아니라 프로그래머블 네트워크의 기반 으로 규정하는 근거다.
라. TI-LFA 고속 재우회. 세그먼트 라우팅은 장애 복구를 위해 TI-LFA(Topology-Independent Loop-Free Alternate) 를 제공한다. 각 노드가 사전에 장애 대비 백업 경로를 세그먼트 목록 형태로 계산해 두었다가, 링크·노드 장애를 감지하면 즉시 백업 세그먼트를 push하여 50ms 이내로 우회한다. 기존 LFA는 토폴로지에 따라 루프 없는 대안 경로가 존재하지 않는 "구멍(coverage hole)"이 생겼으나, TI-LFA는 장애 후 수렴 상태의 최단경로(post-convergence path)를 세그먼트로 강제 지정하므로 모든 토폴로지에서 루프 없는 100% 커버리지 를 보장한다. RSVP-TE FRR과 달리 백업 터널을 미리 시그널링해 상태로 들고 있을 필요가 없어 코어 상태 부담 없이 같은 보호 수준을 달성한다는 점이 결정적 차이다.
마. SR-MPLS와 SRv6의 선택 기준. 두 데이터 평면은 우열이 아니라 용도에 따라 선택한다. SR-MPLS는 기존 MPLS 포워딩 칩·운영 노하우를 재사용하므로 투자 보호와 점진 전환 에 유리하지만, 서비스 식별이 여전히 레이블 스택과 별도 제어에 의존한다. 반면 SRv6는 IPv6 네이티브로 터널 캡슐화 없이 네트워크 프로그래밍·SFC·VPN을 SID 하나로 통합 하지만 헤더 오버헤드와 IPv6 전면화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다음 표는 두 방식의 설계 포인트를 비교한다.
| 구분 | SR-MPLS | SRv6 |
|---|---|---|
| SID 표현 | 20비트 MPLS 레이블 | 128비트 IPv6 주소(Locator+Function+Arg) |
| 데이터 평면 | 기존 MPLS 포워딩 재사용 | IPv6 + SRH 확장헤더 |
| 오버헤드 | 작음(레이블 4바이트) | 큼(SID당 16바이트, uSID로 완화) |
| 서비스 표현 | 레이블 스택 + 별도 제어 | Function으로 VPN·SFC 네이티브 |
| 전환 용이성 | 높음(기존 MPLS 망에 점진 도입) | IPv6 전면화·하드웨어 교체 전제 |
| 주 적용처 | 통신사 백본 TE 현대화 | 5G·클라우드 네이티브·SFC |
바. Binding SID와 SR-Policy. 세그먼트 목록이 길어지면 엣지 노드의 push 부담과 헤더 오버헤드가 커진다. 이를 완화하는 장치가 Binding SID(BSID) 로, 하나의 SID가 "미리 정의된 또 다른 세그먼트 목록(또는 SR-Policy)"을 대표하도록 바인딩한다. 출발지는 긴 경로 대신 BSID 하나만 push하고, BSID의 앵커 노드가 내부에서 실제 목록을 펼친다. 이로써 경로를 계층화(hierarchy)·모듈화 할 수 있어, 도메인 간 경계에서 각 도메인의 세부 경로를 BSID로 추상화하거나, 컨트롤러가 정책을 BSID 단위로 교체해 무중단 경로 변경 을 수행할 수 있다. 실무에서 멀티도메인(access-aggregation-core) 백본의 종단간 경로를 BSID로 꿰는 설계가 대표적이다.
4. 주요 기능 비교 — MPLS-TE 대비
세그먼트 라우팅과 전통적 MPLS(LDP+RSVP-TE)의 차이는 단순한 프로토콜 교체가 아니라 상태를 어디에 둘 것인가 라는 설계 철학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RSVP-TE는 경로 상태를 코어 전체에 분산 저장하므로 터널 수에 비례해 상태가 폭증하고 재수렴이 느린 반면, SR은 상태를 패킷과 엣지로 옮겨 코어를 무상태화한다. 이 차이가 확장성·운영성·자동화 적합성의 격차로 이어진다.
| 구분 | MPLS LDP+RSVP-TE | Segment Routing(SR-MPLS/SRv6) |
|---|---|---|
| 경로 상태 | 코어 노드마다 터널별 상태 저장 | 패킷 헤더에 경로, 코어 무상태 |
| 레이블/SID 분배 | LDP·RSVP-TE 별도 프로토콜 | IGP(IS-IS/OSPF) 확장으로 통합 |
| TE 방식 | RSVP-TE 명시 시그널링 | SID 목록 소스 라우팅 + PCE |
| 장애 복구 | FRR(백업 터널 사전 상태 필요) | TI-LFA(상태 없이 100% 커버) |
| SDN 정합성 | 낮음(분산 상태) | 높음(중앙 계산·상태 없는 전달) |
| VPN·SFC | 레이블 스택 + 별도 제어 | SRv6 Function으로 네이티브 표현 |
오버헤드를 수치로 보면, SRv6에서 세그먼트 3개 경로는 기본 SRH 8바이트에 SID 3×16바이트를 더해 56바이트의 추가 헤더가 붙는다. 1,500바이트 MTU 환경에서 이는 약 3.7%의 대역폭 오버헤드이자, 가장자리 케이스에서 단편화를 유발할 수 있는 크기다. 반면 16비트 uSID를 쓰면 같은 3홉을 하나의 128비트 주소 안에 담아 추가 SRH 없이 표현할 수 있어 오버헤드가 급감한다. 이 때문에 신규 SRv6 백본 설계에서는 점보 프레임(9,000바이트) 전제 위에 uSID를 기본 채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 차이는 장애 수렴 속도에서도 드러난다. RSVP-TE는 경로가 끊기면 head-end가 재시그널링으로 새 터널을 세워야 하므로 대규모 망에서 수렴이 느리고 그동안 상태가 불일치할 수 있는 반면, SR은 IGP가 재수렴하면 각 노드가 새 최단경로로 자동 전환되고 Prefix SID 의미가 그대로 유지되므로 별도 재시그널링이 필요 없다. 또 신규 서비스 개통 시 RSVP-TE는 경로상 모든 노드에 터널을 프로비저닝해야 하지만, SR은 엣지에서 SID 목록만 지정하면 되어 프로비저닝 접점이 엣지 한 곳으로 축소 된다. 이것이 운영비(OPEX)와 개통 리드타임을 낮추는 실질적 효과로 이어진다.
실무적으로 대형 통신사업자·클라우드 백본은 RSVP-TE의 상태 부담 때문에 SR로 전환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글로벌 콘텐츠·통신 사업자들이 수만 개 TE 터널을 SR-Policy로 대체해 제어 평면 상태를 대폭 줄인 사례가 보고된다. 다만 SRv6는 SRH로 인해 패킷 오버헤드가 커진다(SID 하나당 16바이트). 세그먼트 3개면 SRH가 40바이트를 넘어 MTU·단편화 이슈가 생기므로, 백본 MTU를 1,500바이트 이상(점보 프레임)으로 상향하거나 뒤에서 다룰 uSID 로 압축하는 설계가 필요하다. 이처럼 "상태 절감"이라는 이득과 "헤더 오버헤드"라는 비용 사이의 트레이드오프를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다.
5. 심화 — 최신 동향과 표준 진화
세그먼트 라우팅은 표준화와 상용 전개가 활발히 진행 중인 영역으로, 기술사 관점에서 다음 흐름을 주목해야 한다.
가. SRv6 uSID(micro-SID)로 오버헤드 극복. SRv6의 최대 약점은 128비트 SID가 길어 세그먼트가 늘수록 헤더가 급격히 커진다는 점이다. 이를 줄이기 위해 uSID(micro-segment) 기법이 등장했다. 하나의 128비트 IPv6 주소 안에 16비트 또는 32비트짜리 micro-SID 여러 개를 컨테이너처럼 나열하여, 주소 한 개로 여러 홉을 표현한다. 예컨대 16비트 uSID면 하나의 주소에 최대 6개 세그먼트를 담아 SRH 없이도(또는 짧은 SRH로) 긴 경로를 표현하므로, 오버헤드·MTU 문제가 크게 완화되고 구형 하드웨어 호환성도 좋아진다. 다수 벤더가 uSID를 상용 라인카드에서 지원하면서 SRv6 도입의 실질적 걸림돌이 낮아졌다.
나. 표준 체계. 아키텍처는 RFC 8402(2018), SRv6 SRH는 RFC 8754(2020), SRv6 네트워크 프로그래밍은 RFC 8986(2021)으로 안정화되었고, SR Policy(RFC 9256)로 TE 정책 모델이 정립되었다. uSID·G-SRv6 등은 IETF 드래프트 단계로 계속 발전 중이므로, 단정보다 "표준화 진행 중"으로 서술하는 것이 안전하다. BGP-LS·PCEP 확장으로 컨트롤러 연동도 표준화되어 있다.
다. 데이터센터·호스트로의 확장. 세그먼트 라우팅은 전통적으로 사업자 백본 기술로 출발했으나, 최근에는 데이터센터 패브릭(leaf-spine)과 호스트(Linux 커널) 로 확장되고 있다. 리눅스 커널은 SRv6 encap·End behavior를 네이티브로 지원하여, 컨테이너·VM이 직접 SRv6 경로에 참여하는 호스트 네트워킹 이 가능하다. 이로써 서버 NIC부터 백본까지 단일 SRv6 평면으로 종단간(end-to-end) 정책을 집행하는 구성이 현실화되며, 이는 eBPF 기반 데이터플레인·CNI와 결합해 클라우드 네이티브 네트워킹의 한 축을 이룬다.
다. 적용 사례와 연계 기술. 5G 전개에서 SRv6는 네트워크 슬라이싱 의 전송(transport) 평면을 구현하는 유력 수단으로 쓰인다. 슬라이스별 SID 목록·SR-Policy로 지연·대역폭이 다른 논리망을 하나의 물리 백본 위에 분리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SRv6는 서비스 펑션 체이닝(SFC)과 결합해 방화벽·LB·DPI를 SID로 엮는 클라우드 네이티브 전개에 활용되며, IPv6 네이티브라 데이터센터·백본·엣지를 단일 평면으로 통합하는 "end-to-end IPv6" 전략과 맞닿는다.
라. 관측성·자동화와의 결합. 세그먼트 라우팅은 경로가 패킷에 명시되므로 In-situ OAM(IOAM)·IPFIX·스트리밍 텔레메트리 와 결합해 어떤 흐름이 어떤 SID 경로를 탔는지 정밀하게 추적할 수 있다. 이는 컨트롤러가 실시간 혼잡·지연을 관측하여 SR-Policy를 자동 재계산하는 폐루프(closed-loop) 자동화 로 이어진다. 즉 세그먼트 라우팅은 전달 기술에 그치지 않고, 의도 기반 네트워킹(IBN)의 실행 계층(enforcement layer)으로 자리매김한다. 국내(한국)에서도 통신 3사가 5G 전송망·백본 현대화 과정에서 SR 기반 TE를 검토·도입하는 흐름이 관측된다(세부 전개 규모는 사업자별로 상이하므로 일반화하여 서술한다).
라. 기출·유사주제 연계. 세그먼트 라우팅은 정보관리기술사·컴퓨터시스템응용기술사에서 MPLS, SDN, 네트워크 슬라이싱, IPv6, 트래픽 엔지니어링과 묶여 출제되기 좋은 주제다. 특히 "MPLS의 한계와 SR의 등장 배경", "SR-MPLS와 SRv6의 비교", "SRv6 네트워크 프로그래밍과 SFC", "TI-LFA 대 RSVP-TE FRR"은 비교·설명형 문항으로 변주되기 쉽다. 답안 구성 시에는 반드시 상태 복잡도 관점(코어 무상태화) 을 중심축으로 삼고, SR-MPLS/SRv6 선택 기준과 uSID 같은 최신 보완 기술을 덧붙이면 깊이 있는 전개가 된다.
6. 고려사항 및 시사점
세그먼트 라우팅 도입은 단순한 프로토콜 교체가 아니라 백본 운영 모델의 전환이므로, 기술사 관점에서 다음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 적용 전략(점진적 전환): 기존 MPLS 자산이 큰 사업자는 하드웨어를 그대로 쓰는 SR-MPLS로 먼저 전환해 LDP·RSVP-TE를 걷어내고, IPv6 전면화와 네트워크 프로그래밍 수요가 성숙하면 SRv6(uSID)로 단계 이행하는 2단계 로드맵이 현실적이다. 한 번에 SRv6로 가려다 하드웨어·MTU 제약에 부딪히는 리스크를 분산한다.
- 트레이드오프(상태 vs 오버헤드): SR은 코어 상태를 없애는 대신 패킷 헤더 오버헤드(특히 SRv6)를 진다. 세그먼트 목록 길이, MTU 정책, uSID 압축, ASIC의 push·SID 처리 한계를 사전에 설계·검증해야 한다. "무상태"의 이득이 헤더 비용을 넘는 구간인지 트래픽 패턴으로 판단한다.
- 운영·보안: 소스 라우팅은 출발지가 경로를 지정하므로, 도메인 경계에서 외부 패킷의 SRH를 반드시 필터링(SR 도메인 봉인) 해 경로 조작·우회 공격을 막아야 한다. 또한 SID는 라우팅 가능한 주소이므로 주소 계획(Locator 설계)과 접근통제가 보안의 핵심이 된다.
- 상호운용·멀티벤더: SR은 IGP 표준 확장에 기반하므로 멀티벤더 상호운용성이 좋은 편이나, SRv6 Function 집합·uSID 포맷은 벤더·드래프트별로 세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대규모 도입 전에 벤더 간 SID 포맷·behavior 상호운용 시험(PoC) 을 거치고, 표준화가 끝난 기능과 드래프트 기능을 구분해 채택하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 전망·연계 기술: SR은 SDN 컨트롤러(PCE)·BGP-LS·텔레메트리 와 결합해 의도 기반(intent-based) 자동 경로 최적화로 진화한다. 5G 슬라이싱, 클라우드 SFC, SD-WAN 언더레이와의 연계를 고려한 아키텍처 설계가 필요하며, 중장기적으로 백본 TE의 사실상 표준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 조직은 IPv6 주소 체계·운영 역량(자동화 도구·관측성)을 선제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종합하면 세그먼트 라우팅은 "상태를 어디에 둘 것인가"라는 질문에 "패킷과 엣지에"라고 답한 아키텍처이며, 이 단순한 발상이 확장성·운영성·자동화 적합성을 동시에 끌어올렸다. 기술사로서 설계를 조언할 때는 기존 자산·IPv6 성숙도·서비스 요구(SFC·슬라이싱)를 종합해 SR-MPLS와 SRv6 중 적정 조합을 제시하고, uSID·관측성·보안 봉인 같은 보완 설계를 함께 권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참고자료
- RFC 8402, Segment Routing Architecture, IETF, https://www.rfc-editor.org/rfc/rfc8402
- RFC 8754, IPv6 Segment Routing Header (SRH), IETF, https://www.rfc-editor.org/rfc/rfc8754
- RFC 8986, SRv6 Network Programming, IETF, https://www.rfc-editor.org/rfc/rfc8986
- RFC 9256, Segment Routing Policy Architecture, IETF, https://www.rfc-editor.org/rfc/rfc9256
한 줄 요약: 세그먼트 라우팅은 출발지가 경로를 SID 목록으로 패킷에 실어 코어를 무상태화하는 소스 라우팅 아키텍처로, SR-MPLS(점진 전환)와 SRv6(IPv6·네트워크 프로그래밍)로 구현되며 IGP 통합·TI-LFA·uSID를 통해 MPLS-TE의 상태 폭증을 해소하고 5G 슬라이싱·SFC·SDN 자동화의 전송 기반으로 진화하고 있다.